투명도 85%
미술관의 조명이 비추는 곳에는 언제나 화려한 작품과 그것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조명의 물리적 한계를 살짝 비껴간 자리에는 정물처럼 서서 공간을 메우는 이들이 있다. 전시지킴이다. 많은 이들이 그저 '서 있는 존재'로 여기는 이 정적인 노동에는, 실상 깊은 고독과 집요한 관찰이 교차하는 시간이 흐른다.
근무 시간 내내 지킴이에게는 업무 외의 생산적인 행위가 허락되지 않는다. 책을 읽는 것도,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그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작품을 지키고, 관람객들을 안내하는 것, 그리고 대화 상대가 없기에 계속 사유로 빠지는 것뿐이다.
대개 휴게 시간을 보장하기에 지킴이의 수가 부족한 환경이다. 하지만 그 제약은 오히려 더 오랜 시간 동안 미술관에 시선을 닿게 했다. 작품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비하는 행태, 렌즈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대상을 소비하려는 시선들, 하다못해 전시의 분위기에 맞춰 옷을 입고 온 사람들의 다채로운 차림새까지. 지킴이는 그 모든 풍경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관찰자였다. 마치 미술관이 열려 있는 시간 내내 드러나있는 작품처럼 말이다.
나아가 지킴이들은 관람객의 지나쳐가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작품 앞에서 나누는 짧은 대화, 이동하면서 지나가듯 내뱉는 불만 사항들은 거의 대부분 수집된다. 이들의 말은 사실 전시가, 그리고 공간이 관람객에게 충분히 닿지 못함을 지적하는 가장 솔직한 피드백이기도 하다.
강한 향을 피우는 작품을 관리했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한 할머니 관람객이 다가왔다. "바람 드는 곳에 자주 나갔다 와요. 목 아프겠어"라는 염려는 그 공간에서 어쩌면 가장 존재감 없이 취급받는 것에 익숙해지던 찰나에 공간을 구성하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받았던 최소한의 존중이었다.
전시지킴이는 단순히 공간의 물리적 안전을 책임지는 경비원이 아니다. 작품과 관객 사이의 거리를 조율하고, 미술관의 보이지 않는 공기를 유지하는 미술관의 숨은 인력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미술관의 정지된 실루엣으로 서 있을 것이다.